전에 그런 생각을 했다. 인생에서 꿈(목표)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든든할까. 망망대해나 성난 파도의 바다에서도 시야에 등대가 있는 느낌이려나. 아마 꿈을 이루는 고단한 과정 중에 있는 사람이 들으면 '왠 속 모르는 소리!'라고 일갈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파스타>에서 '주방보조'가 해야하는 일을 보면 끔찍할 정도다. 아무리 요리사라는 꿈이 있다지만, 너무나 막막한 꿈이란 느낌이었다. 모두가 같은 꿈을 갖고 있는 주방이란 공간에서 가장 그 꿈과 자리에 있는 존재. 게다가 그걸 원하지 않아도 매일 확인할 수밖에 없는 존재. 또 원래 저 정도 크기의 주방에서도 보조는 한 명만 쓰는 것인지, 재료손질부터 잡심부름까지 땅에 편히 발 디딜 틈없이 내내 날아다니는 존재가 바로 <파스타> 속 주방보조다. 그리고 주인공 공효진이 3년을 버틴 이 일의 후임자로 등장한 사람이 은수, 최재훈이다.


초반 <파스타>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이선균과 공효진 두 사람에게 집중했다면, 두 사람의 연애담이 가속화되면서 주방의 조연들 존재도 점점 커지면서 묘사가 세밀해지고 있다. 이번주에 방송된 11, 12화의 주인공은 주방의 2인자인 부주방장과 주방보조인 막내 은수였는데, 특히 은수의 존재가 눈에 띈 한 주였다.



"주방에서 연애하지 말라"고 했지 "주방 밖(근무시간 외)에서도 연애하지 말라"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왜 이선균과 공효진이 그리 전전긍긍하는지 모르겠지만, 방영 초기 '우리 호남씨'와 다른 여자 요리사가 연애(라고 하나 사실은 주방 내 진한 스킨십)를 이유로 해고당한 뒤부터 사귀는 기정사실인 주인공 커플의 비밀폭로를 누가 담당할지 궁금했었다. 당연히 해고당한 3인방이라 생각했지, 은수가 열쇠를 쥐는 존재로 등장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공효진의 후임으로 들어와서 주방 장면에서는 늘 등장하지만 대사도 별로 없고, 게다가 일도 잘할 리가 없는, 종종 농담이나 치면서(가령 '셰프라면'처럼) 감초 역할에 충실할 역할이라 짐작됐었다.


그런 은수를 <파스타>는 전면으로 내세운다. 해고 3인방에게 발각되 "남은 연애한다고 자르더니 너는 연애하냐!"고 따지는 식의 상황전개로 쉽게 가지 않는다. 오히려 막내이고 보조일 뿐이고 아직은 잘하는 게 쥐뿔도 없지만 그래도 요리사라는 꿈이 있고 무엇보다 셰프를 존경하는 은수에게 열쇠를 맡긴다. 누군가를 존경하고 그 누군가처럼 되고 싶었던 청년이 그 누군가에게 느낀 배신감, 실망감, 좌절감, 서러움을 절절하게 그려낸 것이다.



크던 작던 누군들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 사람이 분명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말과 행동이 달랐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의 그 실망감이란! <파스타>는 그 실망감을 '연애사실폭로'의 도구로 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실망감과 함께 화장실에 망연자실히 있는 은수의 월급봉투 상황까지도 그려낸다. 게다가 은수에게 파스타를 만들 기회를 주고, 은수가 "셰프랑 서유경이랑 주방서 연애한다"고 외칠 기회까지 준다.  


얼마 전에 읽은 인터뷰에서 카세 료는 이렇게 말했다. "연기할 때 늘 생각하는 것은 인생에서 주역이 될 수 없는 사람에게 빛을 보게 하는 일. 내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기함으로써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람을 구제하고 싶다."


<파스타> 11, 12화는 뚝심있는 각본과 연출로 카세 료가 말한 지점을 성취해낸다. 그리고 은수 역의 최재환이 그걸 증명해낸다. 자신이 만든 파스타를 먹고는 울먹거리며 "드럽게 맛없다"고 하고, 자신의 방에 나란히 누운 이선균과 공효진 사이에 낑겨 누워 "맨날 저 사진들 혼자 보고 외로워 죽는 줄 알았네"라는 절절하지만 무겁지 않은 대사는 그의 세심한 연기 덕에 생생해진다. 나아가 그 덕에 이번주 <파스타>도 계속 사랑스러운 드라마로 기억될 수 있었다.